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아무리 삶이 어려워도 면면이 흘러오는 서정성은 드러나기 마련인지 암울한 일정시대에도 비탄조 일색의 비가(悲歌)에서 벗어나 마음에 서려 있는 그대로가 노랫말이 되어 그 꾸밈새 없는 심경에 흥겨움 까지 가미된 풍의 노래가 1930년대 후반에 많이 등장하게 되었으니, ‘풍년송, 온돌야화, 총각 진정서’ 등이 그것이다. 풍년송은 우리나라 가을걷이 모습의 정형이다. 삼사월 단비에 씨를 부리고 육칠월 햇빛에 오곡이 익었다. 옆집의 참봉님도 지게를 지고 나가고 양반 댁 아가씨도 섬섬옥수에 낫을 들고 나간다. 가을에 남녀노소 귀천 없이 들로 나서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1937년 김용호 작사, 문 호월 작곡 고 복수, 이 은파 노래로 되어 있다. 이어 온돌야화(溫突夜話)는 근년에 편곡 개사 되어 ‘갑돌이와 갑순이’로 널리 알려진 노래다. 우리나라의 겨울 따듯한 온돌방, 아랫목에서 이루어지는 혼담 일화를 잘 그려놓고 있다. 노래 시작 전에 배경을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대사는 그 푸근함과 구수함을 한껏 더해 준다. ‘그 사기에 적혀 있는 것은 아니로되 지금으로부터 한 육십년 전 박돌이란 총각과 갑순이란 처녀가 있었답니다.’ 온돌방, 말만 들어도 한국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게다가 혼담이 오가고, 나중에는 둘 다 각기 다른 짝을 만나야 하는 쓰라림을 익살과 해학으로 풀어가는 재미있는 내용이다. 1939년 김 다인 작사. 전 기현 작곡, 이 영한, 함 석초 노래로 되어 있다.

 누님 누님 나 장가보내 주
 까마귀 까치 울고 호박꽃 피는 내 고향의
 어여쁘고 순직한 아가씨가 나는 좋아
 오이김치 열무김치 맛있게 담고
 알뜰살뜰 아들딸 낳는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보내 주 응 응 응응 장가 갈 테야
 
 누님 누님 나 장가보내 주
 귀뚜라미 울고 들국화 피는 내 고향의
 앵두같이 귀여운 아가씨가 나는 좋아
 뽕잎 따서 누에 치고 길쌈 잘하고
 요미조미 재미 성 있는 아가씨에게
 누님 누님 나 장가보내 주 응 응 응응 장가 갈 테야
  
  1938년 조 명암 작사, 박 시춘 작곡, 김정구 노래

 이 총각 진정서 또한 지극히 한국적인 정서다. 나이가 찬 총각이 예쁜 색시를 얻고 싶은데 집안 어른들보고는 차마 말을 못 꺼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시집간 누나가 다니러 온 것이다. 때를 만난 것이다. 이 총각 동생은 누나를 보고 장가보내 달라고 졸라댄다. 누나를 통한 간접 호소가 가족 간 대화의 구조까지 보여주는 실감나는 묘사다.
이때에 이르러서야 드디어 슬픔에서 깨어나 눈물을 웃음과 힘과 낭만으로 바꾸려 하는 시도가 힘차게 약동하기 시작했으니 그 대표곡이 ‘감격시대, 바다의 교향시’ 등이다

 거리는 부른다 환희에 빛나는 숨 쉬는 거리다
 미풍은 속삭인다 빛나는 눈동자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불러라 거리의 사랑아
 휘파람 불며가자 내일의 청춘아

 바다는 부른다 정열에 넘치는 청춘의 바다여
 오색기 팔랑팔랑 바람 새 좋구나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저어라 바다의 사랑아
 희망봉 멀지 않다 행운의 뱃길아

  1939년 강사랑 작사, 박 시춘 작곡, 남 인수 노래 ‘감격시대’

 내 민족 내 나라를 죽도록 사랑하고 싶어도 그 사랑을 받아 줄 대상이 없고, 해도(海圖)에서 좌표조차 사라져 버린 서글픔이 강렬한 그리움으로 승화된 ‘번지 없는 주막, 짝사랑’이 있다.

 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지나친 그 세월이 나를 울립니다
 여울에 아롱젖은 이지러진 조각달
 강물도 출렁출렁 목이 멥니다

  박 영호 작사, 손목인 작곡, 고 복수 노래 ‘짝사랑 1936년’

 마땅히 이 나라 국민은 이 나라를 사랑해야 하는데 그 대상인 나라가 쓰러짐은 물론 나라에 대한 애정을 표현해서도 안 되니 마음속으로만 그리워하는 짝사랑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바람에 시달려 우는 으악새(억새풀)는 일제에 시달려 우는 이 땅의 민초를 상징하고 ‘가을인가요 ?’ 하고 묻는 것은 이 강산의 쓸쓸함에 대한 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반문이다. ‘지나친 세월’은 식민 통치 이전의 행복했던 세월이요, ‘이지러진 조각 달’은 가물거리는 국운이다. ‘’잃어진 그 사랑‘은 나라와 국민 사이에 실종된 사랑이요, 들녘에 떨고 있는 임자 없는 들국화는 나라 없는 국민, 국민 없는 나라의 고독한 초상이다. 조국에 대한 사랑을 품고도 그 사랑을 표현할 수 없고 표현해서도 안 되는, 아니 표현하지 말라고 하는, 이 서러움의 겨레에게 있어서 응어리진 겨레의 가슴앓이가 표제로 상징된 것이다.
 이 모든 시련을 이기고 영원히 그 생명력을 잃지 않는 불멸의 영혼, 그 불사조가 바로 우리 겨레다. 시련을 맞을지언정 영원히 죽지 않는 이 나라, 이 겨레, 이 민족을 노래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새가 되어 다시 날아오름을 노래한다. 

 능라적삼 옷깃을 여미고 여미면서 구슬 같은 눈물방울 소매를 적실 때
 장부의 철석간장이 녹고 또 녹아도 한양 가는 청노새 발걸음이 바쁘다
 때는 흘러 풍상은 몇 번이나 바뀌어도 일편단심 푸는 한이 천추에 끝이 없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넋은 사라졌건만 죽지 않는 새가 되어 뼈아프게 울음 우네
 이내 몸이 왔을 때는 그대 몸은 무덤 속 정막강산 뻐꾹새도 무정함을 호소하니
 영화도 소용없고 부귀는 무엇 하나 황성락일(荒城落日) 옛터에 낙화조차 날리네

  1933년 김 능인 작사, 문 호월 작곡, 이 난영 노래 ‘불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