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재 순 삼산면 병산리

 호랑이가 여우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여우가 말했다. ‘내 말 좀 들어 보시오. 천제(天帝)께서 여우를 짐승들의 왕으로 삼으셨으니 나를 잡아먹으면 천제의 명을 어기는 것이 된다. 내 말이 거짓말이라면 어디 한 번 내 뒤를 따라와 봐라’. 그래서 호랑이는 여우가 하자는 대로 했더니 과연 모든 짐승들이 겁에 질려 꽁무니를 뺐다. 그러자 호랑이는 과연 그 말이 옳구나 하면서 여우를 놓아 주었다. 실은 짐승들이 두려워 한 것은 여우가 아니라 호랑이 자신 때문이었던 것도 모른 채.
 전국시대 말기 제나라의 왕족으로 설(辥) 땅의 영주였던 맹상군은 식객을 잘 대접해 그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 어느 날 빙환이라는 꾀죄죄한 옷을 입은 사람이 식객으로 묵고 싶다며 찾아왔다. 빙환을 휘장 뒤에 두고 시험했다. ‘선생은 멀리서 오셨는데 무엇을 배우셨습니까 ?’ 맹상군의 물음에 빙환은 담담히 답했다. ‘가난한 이 몸을 맡겼으면 합니다.’ ‘이렇다 할 재능도 없는 것 같고 소개장도 없으니 3등 숙사에 머무는 게 어떻겠소 ?’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빙환은 특별히 재능이 있어 보이지 않았으나 태도나 말씨가 의젓한 데 호감이 가 식객으로 두기로 한 것이다.. 맹상군은 열흘이 지나 관리인에게 물어 보았다. ‘그 동안 빙 선생은 어떻게 하고 있나 ?’ ‘그 사람의 궁상에 대해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소지품이라곤 칼  하나뿐인데 그것도 자루를 새끼줄로 묶은 변변치 못한 것입니다. 그 칼을 두드리며, 돌아갈까 ? 내게는 생선도 안 주는구나 하고 노래를 합니다.’ ‘방법이 없다. 생선이 나오는 2등 숙사로 옮겨 줘라.’ 그로부터 또 5일이 지나 맹상군이 물었다. ‘이번에는 즐거워하던가 ?’ ‘아뇨, 아직도 칼을 두드리며 노래를 합니다. 장검아 돌아갈까 ? 가족과 지내지 못한다면... 하면서 말입니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나 맹상군이 제나라 재상으로 있으면서 1만호의 영지를 가질 수 있었으나 3천 명의 식객을 거느리다 보니 조세수입 만으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주민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수입을 올리려고 했다. 그러나 맹상군은 인정이 많아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도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 일로 대부금 회수의 책임자로 누구를 쓸까 하고 고심하고 있는데 숙사의 관리인이 말했다. ‘빙 선생이 어떨까 요 ?  이렇다 할 재능은 없으나 말재간만큼은 어지간히 뛰어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빙환을 불렀더니 히죽 웃으며 승낙했다. 빙환은 마을로 내려가 돈을 빌려 간 사람들을 한 자리에 불렀다. 마을 사람들은 빙환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두려움을 느끼며 금방 이자를 가지고 왔다. 그러자 빙환은 그 돈으로 사람들을 모아 술잔치를 벌였다. 술이 충분히 돌자 증서를 꺼내 이자를 지불한 사람들에게는 기한을 정하여 원금을 갚도록 하고 이자를 지불하지 않은 사람들의 증서를 불태워 버렸다. 그러자 모두들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했다. 빙환이 맹상군의 증서를 태워 없애고 더군다나 받아들인 이자로 모두 먹고 마셨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격노하여, 빙환에게 힐문했다. ‘그러지 빙환이 답했다. ’빌려 간 사람의 지불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연회를 벌였습니다. 제가 쏘아 보아도 이자를 갚지 않은 자는 10년을 재촉해도 갚지 못할 자들입니다. 무리하게 받으려한다면 다른 나라로 야반도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영주님의 명성도 떨어집니다. 그것보다도 지불 능력이 있는 자들로부터 하루빨리 원금을 반환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지불 능력이 없는 자들에게는 은의를 베풀어 명군의 이름을 높이 해 두면 백성은 의욕이 생겨 백성들은 이후에도 조세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입니다. 눈앞의 대금이나 이자의 일은 잊어버려 주십시오 ‘. 이런 빙환의 생각에서 나온 영민 회유책에 맹상군은 이렇게 생각했다. ’아 저 사람은 쓸만하구나. 저 사람은 정말이지 구하기 힘든 인물이다‘. 그리고는 인물이라는 것은 겉으로는 알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으로 알았던 빙환의 사람됨을 제대로 알아 본 것이다.

 이처럼 인간끼리의 교제에는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고, 타인의 일을 자신의 일로 여기는 배려가 그 바탕이 된다. 인간은 누구나 같이 어울려 사는 사람끼리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사람 사이에 좋은 관계를 형성하려면 진정성이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선물을 했더라도 진정성이 담기지 않았다면 선물한 사람의 금전적 여유가 사라지는 순간 그 관계도 끝나게 되어있다. 아무리 하찮은 선물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겼을 때 그 선물을 받은 사람에게는 선물 자체보다 훨씬 큰마음의 선물을 받은 것이다. 인간관계의 핵심은 친절과 신뢰감이다. 친밀감에서 매사에 부드러움이 생겨나고 자연스러운 친화감이 우러난다. 누구나 가까이하고 싶고 가까이하기 쉬운 사람이 되어 갈 것이다.
 진정성과도 거리가 멀고 겉과 속이 다른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아첨일 것이다. 주위에 아첨하는 무리 일색이라면 윗사람에게 듣기 좋은 정보만 들어갈 것이다. 그 결과 주변에 올바른 정보가 차단되어 주변 정세를 제대로 읽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판단을 그르치기 쉽게 될 것이고 그 듣기 좋은 말에 현혹되어 조직과 괴리될 수 있으니 그 조직이 클수록 그 역효과는 클 것이다. 또 아첨만 듣다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만족에 빠져 발전과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더 나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타인을 깔보게 될 것이고 점점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져들 것이다. 나의 결점을 지적해 주는 사람이야말로 나의 스승임을 잊기 쉽다. 이 일은 대체로 머리로는 이해하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듣기 거북한 심한 말을 듣고도 기뻐하기란 참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조직의 내부 및 아랫사람들의 비판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윗사람이란 이러한 면에서도 엄격한 자기경계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숨기려 해서는 안 된다. 아주 작은 하찮은 일도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있다. 스스로 잘난 척 하는 사람치고 신통한 사람은 드물다. 스스로 그 공을 뽐낼 때 그 공은 사라지고 만다. 명성을 떨칠 때가 자신에게 가장 위험할 때임을 자각하기란 쉽지 않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자만이야말로 참으로 위험한 생각이다. 예나 지금이나 달을 쳐다보는 것은 그 달이 좋아서가 아니라 정조(情操)를 가다듬기 위해서이고 낚시를 드리우는 것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이 아니라 정신과 육체의 단련에 있듯이, 취업이나 사업을 하는 것도 그 목적이 돈을 버는 데만 있지 않음은 물론이다. 숨기는 것 보다 더 잘 드러나는 것이 없고 희미한 것 보다 더 분명한 것이 없다. 사람은 혼자일 때 더 조심해야 할 일이다.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성실(誠實)은 인간이 가진 가장 고상한 덕목이다. 교언(巧言)으로서 남을 기쁘게 해 주어도 그 한 때 뿐이며 오히려 실망을 사기 쉽다. 진심이 담긴 고언(苦言)일 때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는 할망정 절대로 헛되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자기가 할 일을 의무감에서 하는 것과 일에 대한 감사의 뜻을 가지고 성심을 다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분만이 아니라 대개의 경우 그 보상이 따른다. 커다란 위험이 앞에 가로놓여 있다면 현명함과 어리석음이 뒤섞여 기다리고 있음을 말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