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대 강진으로 진앙지인 경주뿐만 아니라 수도권까지 흔들리자 전국이 지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강진이 발생한 데 이어 19일 규모 4.5와 21일 규모 3.5의 지진이 발생하는 등 여진이 계속되면서 경주지역 주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특히 경주와 가까운 포항·대구·울산· 경남· 부산지역 주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앞서 강진은 한반도 전체를 뒤흔들어 놓았다는 게 문제다. 한반도가 이제 더 이상 지진으로 인한 안전지대가 아님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산피해 복구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공포감과 정신적 충격을 치유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지진으로 기상청의 재난정보도 문제시 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지금껏 지진에 대한 매뉴얼이 정립되지 않고 있다. 인근 일본의 상황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미 그들은 잦은 지진으로 재난대응 태세가 수십 년 전부터 갖춰진 상태다.
 
 강진이후 21일 현재 여진은 총 412회나 발생했다. 규모별로 보면 1.5∼3.0이 395회로 가장 많고, 3.0∼4.0 15회, 4.0∼5.0 2회이다. 크고 작은 여진이 이어지면서 가만히 누워있어도 집이 흔들리는 것처럼 느끼는 지진멀미를 겪거나 사소한 소음에도 화들짝 놀라 신경이 곤두선다고 호소한다. 소화불량·두통·불면증·어지럼 증세로 신경안정제나 수면제를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 또 대입 수능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의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불안 심리를 반영하듯 인터넷에는 근거 없는 지진괴담이 떠돌고 비상용품을 담은 생존배낭을 준비하는 가정도 늘고 있다.
 이처럼 온 나라가 지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은 사상 유례가 없는 강진이 근본 원인이지만 재난상황에 제대로 대응 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늑장 경보체계와 컨트롤타워 부재 등 재난대응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국민의 불안감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겪는 증상은 전형적인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보인다. 지진·화재·홍수·전쟁 등 큰 재난을 겪은 후 오랫동안 심리적 고통에 시달리는 증상이다. 증상이 심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지만 심하면 전문가 상담, 약물치료 등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재난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정부 차원의 대책은 기대에 미쳐도 한참 못 미친다. 심리치료 지원을 총괄할 컨트롤타워 조차 없고 현장에서 활용할 매뉴얼도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 이후 정부가 추진했던 ‘국립트라우마센터’는 예산이 전액 삭감돼 백지화됐다.
 지진이 잦은 일본의 경우 1995년 한신대지진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 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의료진과 봉사자들을 위한 상황별 대응 매뉴얼을 만들었다. 정부는 물론 각 지자체에서도 이번 지진을 거울삼아 지금부터라도 대형재난에 대비한 체계적 심리지원 시스템 구축을 서둘러야 함이 당연하다.